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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검찰청에도 사람이 살아요

검찰청 환경관리 여사님들이 칭찬을 해주셨다.

상황실장 근무를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상황실은 야간이나 주말 관할 경찰에서 올라오는 영장기록과 변사기록을 접수하는 곳이다. 어제 아침 9시부터 새벽까지 접수된 변사기록과 영장기록을 헤아리니 5건이다. 그 가운데 변사기록이 2건. 모두 자살이다. 

변사기록을 접수하는 검찰청이 전국에 50개 정도..... 그렇다면 어림잡아 지난 24시간 동안 전국에서 100여 명이 사망했다는 결론이다. 어림잡아 교통사고 같은 사건 사고로 사망한 사람 50%를 빼고 나면 50명 정도가 자살한 사람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경찰들은 낮시간 각 담당자들을 찾아가 영장기록과 변사기록을 찾아갈 것이다. 한치에 오차도 없어야 하기에 다시 한번 기록들이 모두 제 자리에 잘 있는지 확인한 후, 동공인식을 통하여 보안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저 멀리 올라오는 햇살에 힘이 있다. 

 

청사 주변을 둘러보며 있어야 할 것이 제 자리에 있는지 확인을 한다. 술에 취해 청사 주변에 누워있는 사람은 없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검찰청사 주변에서는 자주 일어난다. 오래전 한 지방 검찰청에서는 민원인 한 명이 밤사이 청사 뒤편에서 농약을 마시고 죽은 일도 있었다. 또, 검찰청에서 근무하는 공익요원이 새벽녘 검찰청사에서 제초제를 먹고 죽은 일도 있었다. 상황실장은 이런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나는 휴~~ 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행히 모두 안녕하다. 청사주변 순찰을 마치고 상황실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1층 청소를 담당하는 공무직 환경관리 여사님을 만난다. 아침 5시에 출근해서 청소를 모두 마친 듯하다.  

 

"계장님 책 잘 읽었어요"

 

갑작스러운 인사다. 내게 책을 받아 간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공무직 여사님 가운데 내게 책을 달라고 하신 분은 다른 분이다.  

 

"아 감사합니다. 제가 책을 드린 기억은 없는데 책은 누구에게 받으셨어요?"

"받은 것은 아니고 사무실에 한 권 있어서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참 어려운 일 하셨네요 장하세요"

"별말씀을요.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뭐.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집행과에서 하는 일이에요"

"예 책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검찰청에 출근하는데 수사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거든요.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죠 검찰청에 출근하시면 검찰가족인데 가족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죠"

 

내게 책을 달라고 하신 분은 민원실 쪽을 담당하고, 조금 전 인사한 여사님은 상황실 쪽을 담당하시는 분이다. 낮시간 1층 사무실에 함께 계시다 보니 내게 책을 받아간 여사님의 책을 읽게 된 것 같다. 내게 책을 달라고 부탁하신 여사님은 새벽에 출근을 해서 청소를 하시다가 책상 위에 수사관이 올려놓은 책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곤 곧바로 나에게 책을 달라셨다. 

 

며칠이 지나고 복도에서 만난 2-3층을 담당하는 여사님은 "조폭 두목을 혼자 잡았던데 무섭지는 않으셨어요?" 라며 책을 잘 읽었다며 칭찬해 주시고, 다시 며칠이 지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4-5층을 담당하는 여사님은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 곳이 검찰청인지 몰랐어요"라고 하신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시면서 엄지를 척하고 올려 세우셨다. 그렇게 환경관리 여사님들께 칭찬을 받았다. 가장 값진 칭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