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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索(사색)

에세이 [잡히면 산다] 서평 - 박순백 (수필가, 언론학박사)


[독후감] "잡히면 산다"니?


박순백(수필가, 언론학박사)

이 책 "잡히면 산다"를 읽기 전엔 "검찰 수사관"이라는 직종이 있는 줄도 몰랐다. 범죄와 관련된 모든 일은 경찰의 일이라고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필자가 저자를 알게 된 지는 거의 스무 성상(星霜)에 가깝다. 계절운동인 스키를 함께하면서도 취미에 관한 얘기만 했지, 정작 서로의 삶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 했다는 얘기다. 이런 얄팍한 인간관계라니...ㅜ.ㅜ(그는 대단히 뛰어난 명망있는 스키어이다.)

알고보니 검찰 수사관은 검사를 도와 범죄수사를 담당하며, 쉽게 말하면 검찰의 압수수색 시에 압수물이 담긴 파란 박스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인권을 중시하는 요즘은 형사재판도 불구속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재판에서 실형 선고 후에 도망을 친 미집행자(자유형 미집행자)나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그걸 안 내고 도망한 피고인(재산형 미집행자)을 검거하여 교도소로 보내는 게 검찰 수사관의 일이다.

말하자면 미집행자는 "도망 중인 거리의 탈옥수"인 셈이다. 법에 의한 처벌인 벌금을 내지 않고, 형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망 가서 처벌의 시효가 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여기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형 집행에 대한 두려움이나 돈이 없어서 등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엄연한 범죄로서 그런 행위는 기존 범죄에 대한 것과 더불어 다른 처벌이 더해지는 것이라 어리석은 일이다.

이들의 직무는 검찰청법에 의해 정해진다. 검사를 보좌하여 범죄 수사를 하고 검찰 사무 업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 검찰청 소속 공무원인 것이다. 검찰 구성원 약 1만 명 중 검찰수사관은 약 6,000명으로 검찰청 전체 인력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검사와 함께 수사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고, 검찰사무 및 수사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어쨌든 뒤늦게 알고보니 지인이라 생각해 온 사람이 전국 검거율 1위의 노련한 검찰 수사관이고, 그가 스무 해 이상에 걸친 자신의 수사 경험을 집대성하여 에세이로 펴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여 미집행자들을 잡아 죄값을 치르게 한다. 그 덕에(?) 근심과 불안 속에 숨어지내던 미집행자들은 처벌을 받은 후에 자신을 사회로부터 격리했던 감옥으로부터 복귀하게 된다.

민사와 형사가 뭔지조차도 잘 모르고 사는 일반 시민들이 이 직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만약 남의 돈을 갈취한 미집행자가 도망을 다니다가 잡혔다고 하자. 그럼 그 돈만 토해내면 처벌이 다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돈을 토해낸 건 재판에서의 참작 사항이고 그건 피해자가 합의금을 받는 것으로 민사 처리가 마무리될 수 있다. 하지만 법을 어긴 데 대한 형사 처벌에서는 징역형과 벌금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처벌을 피하지 못 한다. 형의 시효는 사건마다 다르고, 벌금을 안 낸 것은 5년이지만, 사형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는 형이 소멸되는 시효 기간이 30년이다.

이 책에서는 베테랑 수사관이 될 때까지 저자가 다뤄온 다양한 사건들을 사명감에 투철한 수사관으로서 혹은 미집행자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처리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매우 흥미로운 사건의 전개와 긴박감 넘치는 해결 과정에 대한 소개는 마치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특히 미집행자의 안타까운 사연들에 대해 수사관이 가진 법 지식을 통해 최대한의 도움과 배려를 하는 부분에서는 깊은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에 책 제목 "잡히면 산다"를 보며 잠깐 의아했다. 잡히면 "형을 산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잡혀야 비로소 목숨을 건진다"는 얘기일까? 책을 읽어가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미집행자들은 도망이 끝나야 인간적인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어서 비로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다. 죄를 짓고 도망다니는 삶은 살아있으되 산 게 아니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고, 자신이나 자신을 아끼는 가족이나 친지들에게도 못 할 짓이다.

검찰 수사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니 정말 딱하면서도 일면 한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일례로 작은 범죄를 저지른 경우, 자신의 죄에 대해 인정하고, 적극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하며, 선처를 구하면 용서받을 수도 있는데 도망함으로써 일을 크게 만들고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일이거나 법을 우습게 보는 경우인데, 그런 작은 일로 인해 인생 자체가 망가지는 일까지 생긴다. 대개의 미집행자들이 도망다니다 잡혔을 때, 그들의 몰골을 보면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있거나 병에 걸려있는 경우가 태반이라 한다. 도망 다니는 하루하루가 불안감에 싸여있고,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황이기에 심리적인 파탄 상태에 이르고, 인간성이 무너져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 먹지 못 하고, 잘 자지도 못 하니 심신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아 있다. 잠자리마저 못 구해 노숙을 하는 등의 상황까지 가다보면, 온몸이 상하게 되고, 멀쩡하던 사람이 심장병이나 폐질환, 또는 당뇨 등 합병증에 걸리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던 잠재한 병이 악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목의 "산다"는 의미는 생명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은 형사적인 문제 하나로 미집행자가 될 때, 그는 신체와 정신이 온전하던 상태에서 중병을 앓거나 죽는 일까지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잡히면 산다"는 얘기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한 검찰수사관의 미집행자들에 대한 충고이자 당부인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우리가 모르던 사회의 한 단면에 대해 깊이 알게 되는 것이고, 법이 무엇이며, 범죄가 무엇인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쩔 수 없는 형사적인 사건 상황으로 치달았을 때 어떤 것이 현명한 판단인가를 명확하게 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의외의 일에 대한 흥미로 잡은 책이 재미와 함께 올바른 삶에 대한 성찰까지 하게 되니 이 책이 주는 사회적인 긍정효과가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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