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길성 (법무사 · 前 검찰수사관)
안녕하세요.
스키타는 법무사, 최길성입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자백’ 하나를 하려 합니다. ^^
사실 지난 4년 동안,
비발디파크 테크노와 힙합 슬로프에서
저 혼자만 아~~~~주 모올래 즐기던 스키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뵐클 페레그린 76 마스터 (구 디콘 76 마스터)입니다.
왜 이제야 이야기를 꺼내느냐고요?
솔직히 말하면, 겁이 났습니다. ^^
이 스키를 추천했다가
“한국 스키장 실정도 모르는 소리 한다”는 핀잔을 듣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4년간의 충분한 실험(?)을 마친 지금,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건 물건입니다. 그것도 꽤 무서운 물건입니다.”

- 124 – 76 – 104
- 회전반경 R 17.6m (176cm 기준)
허리폭 76mm, 회전반경은 무려 17.6m입니다.
대한민국 스키어들의 통념은 분명합니다.
강설, 특히 아이스반이 잦은 한국 스키장에서는 허리 65mm 안팎의 월드컵(WC) 스키가 정답이라고들 합니다.
마찬가지로 대회출전을 위해서는 월드컵 회전스키가 답이다
저 역시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뚱뚱한’ 녀석이 과연 비발디테크노 슬로프에 갑자기 나타나는 빙판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17.6m의 긴 호흡으로, 좁고 사람 많은 슬로프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바닥에 누런 얼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즌 말 테크노 슬로프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얇고 예민한 월드컵 스키라면 작은 실수에도 스키가 튀고, 날이 밀리며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페레그린 76은 다릅니다.
"묵직하게 깔립니다."
그리고 범프건, 아이스건 가리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갑니다.
76mm의 넓은 허리는 둔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압도적입니다.
설면 요철에서 올라오는 잔진동? 그런 건 거의 없습니다.
마치 탱크가 지나가듯,
울퉁불퉁한 설면을 지그시 눌러가며 나아갑니다.
월드컵 스키가 얼음 위에서 “끼기긱” 비명을 지른다면, 이 녀석은 “스으윽” 버터를 바르듯 설면을 가르며 지나갑니다.
그 느낌이 참 묘합니다. 끈적끈적합니다.
스키가 낭창거리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착 달라붙어 “주인님, 걱정 말고 밟으세요. 제가 다 받아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든든함이 있습니다.
이 맛을 알고 나니, 허리가 얇은 스키 특유의 가벼운 까칠함이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지난 시즌 말, 이번 시즌 제품으로 구입해 즐기고 있는 장비들입니다.
- 왼쪽: 페레그린 76 MASTER
- 가운데: 페레그린 72 MASTER (지난해 시승기 작성 완료)
- 오른쪽: SL MASTER
각각의 성격은 이렇습니다.
- SL Master
날카로운 단도(短刀) 같습니다.
예리하지만, 회전반경 12m대 스키 중에서는 가장 다루기 쉽습니다. - Peregrine 72 MASTER
잘 재단된 ‘근육 수트’ 같습니다.
빠르고 경쾌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해 시승기를 참고하시길.) - Peregrine 76 MASTER
이건 그냥 ‘중장비’입니다.
그런데 AI 보조가 달린 중장비 같은 느낌입니다
Peregrine 76 Master (176)의 진짜 재미는 의외의 조작성입니다.
17.6m 회전반경이라 롱턴 전용일 것 같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뵐클 특유의 테일러드 카본 팁, 그리고 앞뒤 로커 덕분에 탑을 툭 던져 넣으면 숏턴이 거짓말처럼 말려 들어옵니다.
물론 SL Master처럼 “팽팽” 튀어 오르는 경박함은 없습니다. 대신 “우~웅” 묵직하지만 정확하게 돌아나갑니다.
그 리듬이 참 좋습니다. 아주 찰집니다.
오래전 이 스키를 처음 슬로프에 들고 나갔을 대 주변에서는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 넓은 걸 어디다 쓰시려고요?”
하지만 4년을 타보고 내린 저의 판결은 분명합니다.
“강설이 많고, 설질이 불규칙한 시간에는 오히려 이 스키가 정답이다.”
월드컵 스키의 예민함에 지치신 분들, 오후에 무너진 슬로프에서도 황제처럼 여유 있게 스킹을 즐기고 싶은 분들께
이 스키를 권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훨씬 짜릿한 자유였습니다.
2025. 12.
비발디파크 정상에서
최길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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