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시가 되자, 나는 오후에 있을 조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가 조사해야 할 사건은 쌍방 폭행 사건이었다. 기록 표지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에는 ‘대질조사’라고 씌어 있었다. 검사는 대질조사를 하여 범죄사실을 특정한 후 기록을 다시 돌려달라는 의사를 단 네 글자로 표현했다. 순간, 피식하고 오묘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검사도 대단하고 나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단 네 글자로 말하고자 하는 모든 의사를 전달하고, 또 단번에 그 뜻을 파악하니 말이다.
나는 당사자 둘에게 3일 전에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둘은 오늘 오후에 출석하기로 했고, 그들은 14시가 되자 정확히 도착했다. 이 사건은 아무리 보아도 쌍방 폭행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피해자라고 우겼다. 사실, 두들겨 맞는 상황에서 열중쉬어하고 있는 사람은 없기에 일방 폭행 사건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드물었다.
나는 기록에 편철되어 있는 동영상 CD를 꺼내어 컴퓨터에 넣었다. 동영상에는 둘이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주먹을 날리는 속도가 프로선수인 것마냥 전광석화다. 둘은 몇 해 전부터 서로의 스파링 상대가 되어 연습을 해왔던 듯 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얼굴을 향해서 저렇게 빠른 주먹질을 할 수 없으리라. 일반사람들은 상대방 얼굴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날리지 않는다. 날리는 주먹에 순간적인 망설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사실에서 내 앞에 앉게 될 사람들의 이렇게 무지막지한 영상을 볼 때면 으레 ‘UFC 격투기 대회에 나갔어야 하는 분들이 길을 잘못 들어 동네에서 이러고 있네’하는 생각이 떠오르며, 한편으론 재능이 퍽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경찰은 둘이 싸우던 곳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보하여 기록에 넣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화질이 매우 뛰어났다. 둘이 싸움을 하던 장소와 아주 가까운 곳에 설치된 CCTV였다.
보통 자동차에 설치된 블랙박스 영상은 소리가 나오지만, 전봇대 등에 설치된 CCTV는 음성이 나오지 않는다. 비록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둘은 서로를 이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처절한 전투였다. 코와 입에서 피가 흐르고, 주먹에서도 피가 흘렀다.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주먹질이 오고 갔다. 쉬는 시간이 규칙적인 것으로 보아 사각 링에서 그러했듯 자신들만의 나름의 규칙이 있는 것 같았다. 둘은 한참을 싸우다가 쉬고, 또 한참을 싸우다가 쉬는 것을 반복했다. 목에 핏대가 선 것을 보니 그들은 잠시 쉬고 있는 와중에도 서로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그 광경에 나는 마치 흑백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순간, 누군가 동영상에 목소리를 입히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사건 기록을 뒤져 둘에 대한 범죄 전력을 확인했다. 둘은 폭행과 상해가 주 종목이었다. 다시 사건조회를 하여 과거에 둘이 선고받은 판결문을 읽어 보았다. 나의 직감대로 수년에 걸쳐 그 둘은 서로에게 별을 달아주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때리고, 상처 입히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수천만 원의 벌금을 내고 있었다.
‘타고난 애국자들인가?’ 나는 한편으로는 그들이 한심하게 느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싸움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날 것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부지기수로 봤다. 결과는 어떠했냐고? 끝이 없는 싸움에서 한 명은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난다.
오후가 되어 현관을 지키는 청원경찰로부터 두 피의자가 도착하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잠시 후, 둘은 일말의 죄의식도 없는 표정으로 검사실에 들어왔다. 나는 둘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는 커피를 석 잔 타서 한잔은 내가 마시고, 두 잔을 둘에게 건냈다.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역시나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변호인선임권과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둘은 수사관 앞에서도 다시 싸움을 시작하였다. 내가 말할 틈조차 주지 않고 싸웠다. 둘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불렀는데, 싸움판을 다시 만들어 준 꼴이 되었다.
“야, 이 개새끼야! 내가 까불지 말라고 했지. 너 죽었어.”
“니가 까불고 있는 거야, 이 쌍놈의 새끼야.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넌 죽을 줄 알아.”
검사실은 금세 욕으로 가득해졌다. 온 사방에 욕이 떠다니고 있었다. 떠다니는 욕이 옷에 묻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허나, 나는 말리지도 않고 끼어들지도 않았다. 가만히 둘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십 분이 지났다. 둘만 떠드는 것이 미안했는지, 갑자기 그들은 싸움을 멈추고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제가 이야기해도 돼요?”
내 말에 둘은 말 잘 듣는 초등학생 마냥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내가 이야기할 차례 맞아요?”
나의 물음에 둘은 또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두 분을 방해하지 않았으니까 두 분도 내 이야기를 방해하지 마세요. 알았죠?”
둘은 세 번째로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내 말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두 분 모두 60이 넘었습니다. 손주 손녀를 보시면서 ‘우리 손녀 너무 예쁘다’, ‘우리 손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할아버지가 사줄게’, ‘우리 손녀 앞으로 커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연세가 되셨어요. 그런데 지금 하시는 ‘죽인다’, ‘눈깔을 뽑아버린다’라는 말은 제가 듣기에도 섬뜩한 말이에요. 여기는 검사실입니다. 두 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곳입니다. 알고 계시죠?”
내 말에 둘은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예, 압니다”라고 답했다. 다시 내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계속 싸우시네요. 검사실에서 이렇게 싸우셨는데 밖에서는 얼마나 더 심하게 싸워왔겠어요. 주제넘게 어린 사람이 한 말씀 올릴게요. 저는 말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사관 생활을 하다 보면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서로 죽인다고 하는데 누가 죽을 거 같습니까? 본인인가요? 다른 사람인가요? 누가 되든지 한 분이 이겼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죽였어요. 그럼 끝인가요? 이긴 사람은 살인자가 되겠죠.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인자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 있겠죠. 제가 이렇게 극단적인 단어를 써가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두 분의 끝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멈추셔야 됩니다. 지금 ‘에이, 설마’라고 생각하시죠? 아닙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더 심한 상황이 생겨요.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선생님들처럼 싸우다가 검찰청에 오셔서 조사를 받고 나서 싸움을 멈추는 사람도 있고, 멈추지 않고 계속 싸움을 하다가 실제로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살인자가 되어서 교도소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주변에서 많이 보아서 잘 알아요.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멈출 것인지, 아니면 이길 때까지 계속할 것인지요. 그런데 이것 하나는 말씀드릴게요. 이 싸움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닙니다. 왜냐구요? 이긴 사람은 바로 교도소로 가서 평생 그곳에서 갇혀 삽니다.”
내 말이 끝나자, 검사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나는 키보드를 가까이 끌어당겨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했다. 둘은 내가 묻는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고분고분 차분히 대답했다. 나는 그 둘에게 서로를 때리는 CCTV 영상을 보여주었다. 잠시 후 손가락을 들어 영상 한구석을 가리켰는데, 내가 가리킨 곳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어린아이 두 명이 있었다.
“이 아이들이 누구예요?” 내 물음에 둘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각각 “손주요.”, “손녀요.”라고 대답했다.
영상 한쪽 구석에는 둘의 손주와 손녀로 보이는 아이들이 할아버지 둘이 싸우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아이들은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내 말에 둘은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나는 이번 조사를 통해 그 둘이 분명 부끄러움에 대해 배웠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조사를 마치고 조서에 둘의 서명 날인을 받았다.
이후 나는 몇 년이 지나 검찰청을 떠났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60대 노인 둘이 싸움을 하다가 누구 하나를 살해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날 그들은 나의 말에서 시간의 소중함,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던 걸까? 순간, 내 얼굴에는 엷은 미소 한 줄기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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