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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이 최고? 순위와 상관없는 가치
최길성
2024. 9. 14. 16:53
살다 보면, 1등이 전부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온다. 학교에서는 1등을 해야 칭찬을 받고, 직장에서는 성과가 곧 인정의 척도로 여겨진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1등을 목표로 삼고, 그 외의 것들은 마치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1등이 아니면 우리의 삶은 의미가 없는 걸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학업에서나 대회에서나 1등을 해본 기억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 받은 상장이라곤 개근상장 세 장이 전부였으니, 누구보다 성실했지만 1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런 내가 검찰청이라는 조직에 들어와 처음으로 1등의 기쁨을 맛보았다. 도망 다니던 범죄자를 기필코 찾아내어 법의 심판을 받게 했을 때, 대기업 회장이 숨겨놓은 거액의 비자금을 국고로 환수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 1등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이제는 1등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법 잘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했다.
하지만 모든 1등이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얻은 또 다른 1등은 ‘검찰청 최초의 남자 육아 휴직자’라는 타이틀이었다. 당시만 해도 남자 수사관이 육아 휴직을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규정상 남자도 육아 휴직을 낼 수 있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실행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인사 담당자는 관련 규정을 찾아 상부에 보고하느라 골치를 썩었고, 나는 “무슨 남자가 육아 휴직을 내느냐"는 상부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조직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직원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육아 휴직 동안 나는 아내와 갓 돌이 지난 딸아이를 데리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 6개월은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복직 후 현실은 냉담했다.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했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곳은 새롭게 신설된 '범죄 피해자 지원팀'이었다. 팀원은 나를 포함하여 고작 세 명이었다. 우리는 이 부서의 역할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마치 그 누구도 걸어본 적 없는 미지의 길을 처음으로 탐험하는 것처럼, 아무런 방향도 없이 나아가야만 했다.
몇 달 후, 우리나라 최초로 서울중앙지검에 ‘범죄 피해자 지원과’가 신설되었다. 이는 기존의 ‘팀’ 규모에서 ‘과’ 단위로 확장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피고인의 인권만이 논의되던 시점이었고, 피해자의 인권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범죄 피해자 지원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 우리 과의 주된 임무가 되었다. 상부의 지침에 따라 ‘범죄 피해자 지원과’의 신설을 홍보해야 했고,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유영철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 유족을 돕기 위한 계획도 함께 세워졌다.
우리 과는 전국 최대의 산악자전거 동호회인 ‘와일드바이크’와 협력하여 기부형 사랑 나눔 장터를 열었다. 장터에서 모금된 수익금으로 유영철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 자녀들을 지원했으며, 당시 인기 있었던 인터넷 포털 ‘드림위즈’에 ‘서울중앙지검 범죄 피해자 지원과 신설’이라는 대형 팝업창을 띄워 홍보를 진행했다. 이 홍보 방법은 당시로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상부는 이런 혁신적인 홍보 방법에 크게 놀랐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홍보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우리 팀에게 직접 격려 전화를 해주었고, 그 결과 나는 서기보(9급)로는 최초로 검찰총장 모범직원 상장을 받았다. ‘모범직원’이라는 상은 일반적으로 상급자나 동료들에게 모범을 보인 경우에 수여되는 상인데, 수사관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서기보가 이 상을 받은 것이었다. 근무 연한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범직원 표창을 받은, 내 평생 네 번째 상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범죄 피해자 지원 시스템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지금은 살인 피해를 당한 유족들에게 국가로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의 피해를 당했다면 가까운 검찰청에 방문하여 상담을 받아보길 적극적으로 권한다.
살아보니, 1등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등에 집중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꼭 1등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신만의 빛을 발할 수 있다. 진정한 성공은 외적인 성과가 아니라, 내면의 성장과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50대가 되어 돌아보니, 그 모든 경험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얻은 깊이는 세월이 준 선물이자, 이제는 나만의 빛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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